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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제주해군기지는 계속 추진해야 한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가장 서글픈 것은 바로 백성들
기사입력 2012-08-24 17:18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조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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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지도에서 나온 제주도지도에 조선시대 3개의 읍성(제주읍성, 대정읍성, 정의읍성)과 9개의 수군진(화북진,조천진,별방진,수산진,서귀진,모슬진,차귀진,명월진,애월진)이 있었으며 25개의 봉수와 38개의 연대가 있었습니다.
 
지도를 보면 파랑색과 하늘색으로 된 원이 바로 읍성과 수군진성이며 녹색으로 된 것은 연대입니다. 또 진한 남색의 경우 봉수이며 빨강색으로 된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군들이 제주도에 세운 군사시설입니다. (중간에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면서 완공을 못한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조선시대 당시 제주도 전체가 요새이며 방어기지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때 모슬포를 중심으로 한 공군기지 및 해군기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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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팬저의 국방여행 panzercho.egloos.com     © 경남시사우리신문편집국
이렇게 봉수와 연대를 통해서 해상으로 오는 적을 알고 신호를 보내 방어하게 하였던 것으로 제주도 전체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연대의 경우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그 통신 방법은 봉수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제주도에서 봉수와 달리 연대의 경우 해안가 주위에 설치되었으며 봉수의 경우 높은 오름에 배치하였습니다. 이렇게 봉수와 연대를 설치한 것은 고려시대 말부터 침입한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시대 들어와서 확실히 활성화 되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연대의 경우 봉수와 같은 방법으로 적의 침입을 알렸습니다. 봉수나 연대의 경우 밤에는 불을 피우고 낮에는 연기를 피었습니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려 불이나 연기로 통신이 불가능할 때에는 봉군이나 연군이 달려가서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때 집신 하나 신고 혹시라도 늦을까 걱정하면서 적의칩입과 연대의 이상 유무를 알렸습니다. 

 
연대의 경우 해안가 가까이에 있다보니 적과 대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해안전투시 유리한 곳에 돌로 쌓았지만 적은 병력이라 큰 역활을 하기에는 무리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연대에는 6명의 별장과 12명의 봉군이 배치되었는데 별장 2명과 봉군 4명 내지 12명이 1조로 구성되어 3교대로 근무했다고 하는데 요즘의 분대규모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봉수나 연대가 있는 곳의 경우 높은지대에 있다보니 많은 바람이 불기도 하고 겨울의 경우 낮은 지대보다는 추운 곳입니다. 

아래 사진은 삼방산에 있는 삼방연대로 최근에 복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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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팬저의 국방여행 panzercho.egloos.com     © 경남시사우리신문편집국
봉수와 연대 그리고 수군진을 통해 제주도를 19세기까지 지켰지만 19세기말 강력한 무장으로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나라의 힘이 강하지 못해 나라가 빼앗기고 제주도민들은 일본군의 비행장건설과 해안기지건설 그리고 군사기지 건설에 동원되었습니다. 그나마 제주도내에서 강제 동원된 것은 운이 좋은편이었고 이역만리 낯선 땅에 강제로 동원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제주도내에 건설된 일본군의 동굴진지의 경우 현재도 남아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것이 더 많다고 합니다. 

이런것은 제주도뿐 아니고 조선의 모든 땅에 사는 백성들의 아픔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빼앗겨 일본을 위해 수 많은 곡식이 수탈 당하였으며 자신들의 군사기지를 짓기위해 대대로 살아왔던 땅을 버리로 강제적으로 이주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힘이 없으면 가장 서글픈 것은 바로 백성들입니다. 아래 사진은 일제강점기 가마오름에 조선인을 동원해서 만든 동굴진지로 현재 평화박물관으로 사용중에 있으며 일본인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원해서 동굴진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에 의해 일본의 방어를 위해 이 가마오름 동굴진지는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여기뿐 아니라 제주 성산일출봉 아래에도 군사기지를 사용할 목적으로 동굴을 만들었고 송악산 동굴진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외에 알뜨르비행장, 정뜨리비행장,진쯔리비행장, 서위봉동굴진지, 어승생악동굴진지 등 수많은 침략흔적들이 제주 곳곳에 남아있으며 우리 스스로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일본의 야혹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우리들은 일제의 의해 강제노역이나 이역만리 전선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전쟁도 아니었고 우리가 원했던 평화도 우리들은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선조들이 국방력을 강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강하지 않으면 후세가 고생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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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팬저의 국방여행 panzercho.egloos.com     © 경남시사우리신문편집국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제주해군기지의 경우 여러반대 단체들에 의해 해군기지가 아닌 해적기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에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정부 시절부터 추진하던 제주해군기지의 경우 노무현정부 시절 확정이 되었으며 이명박정부에 착공이 들어갔으며 앞으로 차기정부에 마무리 될 예정입니다. 자신들의 정파와 정치적목적이 맞지 않다고 해서 반대를 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차기정부 어느 정당이 수권정당이 되어도 제주해군기지는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는 제주남방으로 들어오는 물동량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의 국토와 재산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들의 국토와 재산을 보호함과 동시에 우리들의 후세에게 물려줄 우리들의 조국과 강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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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팬저의 국방여행 panzercho.egloos.com     © 경남시사우리신문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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